어린 시절,
이렇게 비가 오시는 날에는
컴컴한 웃방에서 종일 토록 짐승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곤 했다.
낮고 음산한 저음의 그 울음 소리에는
비릿한 바다 내음이 뒤 섞여 있었고
고통을 참는 소리라기 보다는
남도 가락 같은 한이 서린 소리 같은 것이었는데,
어둡고 축축한 아랫방에서 빗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리는 그소리를 들으며
어린 삼남매는 가슴을 졸이고 살아 왔다.
어떤 때는 금방 숨이 넘어 갈것만 같은
빠른 템포의 신음소리가 들리면
나는 눈앞이 아득하게 몰려 오는 두려움에
어린 가슴을 떨면서
웃방 장지문을 열어 보곤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비오는 날이면
웃방에서 앓아 누우신 채로
젊은 청춘을 보내셨다.
고무다라에 팔다만 생선들이
역겨운 비린내를 풍기며 뒤척이고 있는 동안
내 어머니는 웃방 어두운 곳에서
걸레처럼 헤진 돈주머니의 배를 가르고
꼬기 꼬기 접혀진 더러운 지폐들을 한무더기
쏟아 놓고 세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엄숙해서
그 작업이 다 끝날 동안
나는 아무 말도 붙여 보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이윽고 작업이 끝나면 내게 동전 몇개를 쥐어 주시곤
그 너덜너덜한 주머니를 이불장속 깊은 곳에
찔러 넣으신 후 나를 말없이 한동안 쳐다 보셨는데,
아마도 내 정직성을 가늠하고 계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는,
엄살이 좀 심하셨던 거 같기도 하다.
육체적인 고통이 심하셨던건 분명 하지만
말없이 참아 내시지는 못 하셨다.
특유의 창법으로 고통을 표현 하셨는데,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식구들은
야릇한 죄의식에 휩싸여 슬프게 가슴을
멍들여 가고 있었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시던 아버지나,
철없이 칭얼대던 어린 동생들이나,
반항적인 기질을 키우고 있던 나나,
비린내가 풍기는 초가지붕 밑에 각자 누워서
서로의 가슴을 쥐워 뜯으며
빗소리를 듣고 있을 때,
가난의 슬픈 세월을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무겁게 업고 건너 갔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문득 달력속에 붉은 글씨를 보면서
간신히 생각 해 내는 당신.
지폐 몇장을 건네고는
할 일을 다 한듯 돌아 서는 내게
어린아이를 바라 보듯
걱정스런 눈길을 돌리지 못 하시던 당신.
종일토록 내리는 비속에서
생선 바구니 속을 뒤적 거리며
유년의 비린내를 맡고 있다.
갈치,조기,밴댕이,아구....
당신의 무너져 버린 젖 무덤이
너무도 그리운 날
비가 오시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