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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의 밤

관리자 0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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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 했다.
머지 않아 어둠이 내릴테고,
우리네 인생도 점차 적막 속으로 들어 가겠지.
무엇을 하면서 어둠과 적막 속을
헤쳐 나가야 할까.

 

위에 보이는 사진의 인물은,
초딩 6년과 중딩 3년을 함께 보낸 동창이다.
밑에 여동생들도 둘이 함께 초딩부터 대학까지 함게 했으니,
유별나게 속내를 잘 아는 집안 사이다.
그 게 큰 이야기 거리는 아니고
녀석을 모델로 삼은것은,
앞에 보이는 악기들 때문이다.

 

녀석은 모은행에서 지점장으로 오래 근무하다
작년에 명퇴를 했으니 지금은 무직인 상태다.
사는 거야 뭐 꿍쳐 논 재산도 있고 퇴직금도 있으니
별 걱정을 안하겠지만,
직업을 잃은 노년의 길목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게
자신의 정체성이다.
할일이 없고 찾아 주는 사람이 없어지니
기력 팔팔하게 돌아 댕기던 녀석이 절여 논 시금치 처럼
한동안 늘어져 있어 보기에 안쓰럽기도 했는데,
어느날 보니,
차 트렁크에 저런 장비를 가득 실고 다닌다.
음악학원에 등록 하고 키타에 빠져 오디션이라도 볼려는 양
허구헌날 거기에 몰두 하더니 제법 자신감이 붙어
친구들 모임에는 장비를 실고 와서 팅까~팅까 울려준다. 

 

아마 젊은 날에 무언가 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으면
지금의 열정으로도 충분히 이루고 남았을것 같다.

노후를 위하여 무언가 준비 해야겠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이 평소에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그런 것들이 있다면 꼭 그것을 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녀석은 전기키타를 둘러 메고 다니더니,
청바지에 펑키머리로 무쓰를 바르고,
셔츠깃도 올리고 생기 발랄하게 인생 황혼길을 즐기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있어야 하는게 필수 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자신을 위해서 써야 할 나이에
목표도 없이 살아 가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닐까.

녀석이 부러워서,
녀석이 너무 멋져서......
한동안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자식은 사법고시에 패쓰를 하고 지금 연수원에 있고,
차에 악기를 실고 동네 방네 돌아 다니는데,
잔소리 한번 안하는 순하디 순한 마누라도 있고,
친구들 한테 한턱씩 쏠 줄도 아는 배포도 있고,
부러워 죽는 줄 알았네.
동창회 모임에 가면 꼭 이런 일들이 크게 웃다가고
쓴웃음이 되게 만들기도 한다.

 
밤 열시반까지 모닥불과 술판 속에서 노래들을 부르다가
텐트족들의 항의 방문에 멈추고 말았지만
무창포의 밤은 이것 저것 많은 것을 생각케 한
모임이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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